이네오스 그레나디어 몰고 직접 150km 주행
오프로드 주행 위한 확실한 ‘컨셉’, 흔치 않은 디자인에 눈길
공식 수입사 차봇 ‘디지털 컨시어지’ 통해 앱으로 상담 및 시승까지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전면. 정원일 기자
요즘 차는 다 비슷하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유선형의 디자인과 낮은 차체. 물리 버튼을 최소화하고 하나의 커다란 터치스크린으로 대체된 실내. 각종 첨단 기능 등. 모험을 위한 스포츠유틸리티차(SUV)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추세가 ‘주류’인 것을 부정할 순 없겠지만, 첨단의 시대에 레트로나 빈티지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듯 대세엔 언제나 반발이 따르는 법이다. 영국의 화학기업 이네오스의 회장인 짐 래트클리프가 친구들과 자주 가는 런던의 작은 펍 ‘그레나디어’에서 진짜 오프로드 자동차 ‘그레나디어’를 만들겠다는 결심한 배경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레 차량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고 지난달 3일간 서울 근교에서 그레나디어를 타고 약 150㎞를 달렸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후면. 정원일 기자
‘탱크야 차야?’…오프로더 ‘덕심’ 물씬국내에서 그레나디어는 스타트업 차봇 모빌리티의 자회사 차봇 모터스가 독점 판매한다. 실제 차량은 서울 성수동에 있는 그레나디어의 쇼룸에서 인도받았는데, 다양한 옵션이 적용된 차량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 공간은 내달 강남구 도산대로로 이사를 앞두고 있지만 혹시나 멀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차봇의 ‘디지털 컨시어지’ 서비스를 이용하면 앱 하나로 그레나디어의 각종 정보와 구매 상담 및 견적, 시승 신청까지 가능하다.
실제로 마주한 그레나디어는 한눈에 ‘투박한 매력’을 드러냈다. 유선형의 SUV와 달리 공기역학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적재 공간을 극대화하는 각진 디자인과 어지간한 대형차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지상고가 눈에 띄었다.
차봇모터스 관계자는 그레나디어에 대해 “오프로더를 위해 좋은 것은 다 집어넣은 차”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차엔 포르쉐에 주로 채택돼 온 레카로의 시트, BMW의 3.0리터 6기통 가솔린 엔진이 탑재됐고, 말안장에 쓰이는 튼튼한 새들 가죽이 스티어링 휠과 조수석의 손잡이 등 곳곳에 적용됐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실내. 정원일 기자
차에 타면 이 차가 오프로드를 달리기 위해 제작됐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항공기 조종석을 연상시키는 수십 개의 버튼이 가장 눈에 띈다. 시동도 열쇠를 돌려 걸린다. 심지어 내부를 물청소해도 문제없게끔 IP54K의 방수·방진 등급까지 충족하고 내부 배수 시스템을 구현한 것도 어지간한 오프로드 마니아가 아니었다면 현실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선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의외성도 돋보인다.
차량으로 험지를 가르기 위해서 필수적인 하부 보호를 위해 하체엔 육중한 강철을 발랐다. 벤츠 ‘지바겐’을 생산해 온 공장인 마그나슈타이어와 협업해 생산하면서 만듦새도 확실히 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종합된 탓일까. 그레나디어에선 다른 차에선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진하고 확실한 색깔이 드러나는 듯했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실내. 정원일 기자
도심 속 독보적 존재감…저속에선 매력이 2배안타깝게도 그레나디어를 몰고 오프로드를 가보진 못했지만, 이 차는 도심 주행에서도 상당한 매력을 드러낸다. 극한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서일까. 기본기가 생각보다 탄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속도가 올라가면서 이뤄지는 부드러운 변속과 낮으면서 우렁찬 배기음, 어지간한 충격은 흡수하는 서스펜션 세팅이 돋보였다.
특히 저속에서는 매력이 배가된다. 운전자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다는 차의 본질에 충실한 느낌이다. 충분한 토크를 발휘하며 3t에 이르는 육중한 차체에도 어지간한 지형은 다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운전석에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저속 위주의 기어 세팅, 사각형 차체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풍절음, 무겁운 스티어링 휠과 다소 큰 회전반경 등이 그렇다. 그럼에도 ‘오프로드’를 위한 차라는 점을 고려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트렁크 공간. 정원일 기자
그레나디어는 지난해 6월 국내에서 판매를 개시한 이후 100여대 정도가 팔린 상황. 고객들이 줄을 서 있지만 생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리는 탓에 주문해도 수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도로에서 보기 어려운 차량인 만큼, 실제 주행 중 무슨 차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흔치 않은 차량을 원한다면 장점으로 작용할 여지도 있을 듯하다.
종합하면 그레나디어는 방향성이 뚜렷한 만큼, 고객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장단점이 명확한 차량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차라는 생각이 든다. 첨단이라는 이름으로 편리함과 실용성만이 미덕이 된 자동차 시장에서 취향이 짙게 묻은 자동차는 보기 드물다는 점에서 그렇다.